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국의 런던에서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고 있는 작가 올페오 타기우리(Orfeo Tagiuri) 입니다. 주로 이미지와 단어를 혼합한 작업물을 많이 만들고,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합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들은 시작과 중간, 그리고 결말이 뚜렷한 구성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연결점에서부터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거미줄과 더 닮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마추어’의 독창성에 박수를 보내고, 앨런 캐프로(Allan Kaprow)의 ‘이제는 예술이 아닌 것이 예술보다 더 예술적이다(Now non-art is more art than Art art.)’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
[Little Passing Thoughts] 라는 드로잉 시리즈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어요. 이 드로잉들은 무엇을 담고 있나요? 제목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각들’을 그린 드로잉이에요. 저는 하루에 한 번, 종이를 앞에 두고 한 시간 정도 자리에 앉아서 제 마음이 자유롭게 허공을 떠돌 수 있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리고 떠다니는 생각의 조각들을 가만히 관찰하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생각이나 아이디어, 관점들을 하나씩 가려내어 그립니다. 조금 엉뚱한 생각들도 많지만 잘 골라내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로 만들어진 드로잉이니 어떻게 보면 ‘레디메이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들이 이미 만들어진 공산품으로 구성된 것처럼요. |
이 드로잉 시리즈는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항상 갤러리나 미술관 바깥에 자리한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The Pole Gallery(전봇대 갤러리)’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작품을 길거리에 전시하도록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The New Yorker’ 잡지를 종종 읽었는데, 오로지 만화 때문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요. 2021년 초반부터는 제 드로잉을 ‘The New Yorker’ 매거진에 직접 기고해 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전부 거절당했습니다(웃음). 하지만 드로잉의 선정 여부를 떠나 너무 진지하지 않은 ‘예술 작품’을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 이 드로잉 시리즈를 통해 저만의 재미있고 섬세한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고, 계속해서 작업해 오고 있습니다. |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꾸준한 연습도 필요하고요. 도움이 되었던 습관이나 방법, 또는 루틴이 있을까요? 최근 드로잉 수업을 들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경험을 하고 그 결과를 살펴보는 수업이었어요.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을,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을 사용하거나, 눈을 감거나, 평소보다 빠르게 그린다든가 하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이 과정을 통해 ‘실수’나 ‘못난’ 작업물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습했습니다. 이러한 받아들임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알아차리고 만들어 내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서 드로잉을 합니다. 이때가 제 마음이 가장 충만하고 탐험 적일 때거든요. 이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는 것도 아침인데, 이때가 제 논리나 언어가 가장 정돈되어 있을 때이기 때문이에요. [Little Passing Thoughts] 드로잉 시리즈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뉴요커(The New Yorker) 잡지를 위한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생각을 걸러내려는 깊은 무의식의 충동을 잠시 멈추고, 가볍게 즐기는 마음을 가지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정기적으로 잡지사에 드로잉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별다른 소식이 없네요! (웃음) |
[Little Passing Thoughts]의 드로잉에서는 단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이 단어들에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드로잉 시리즈에서 단어는 어찌 보면 드로잉 자체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것과 언어 뒤에 숨어있는 것의 균형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에요. 제가 ‘꽃’이라는 단어를 말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제가 상상했던 것 과는 아주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겠지요. 이러한 차이는 어떤 단어를 친밀하게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 중간의 갭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
 [The Time for Myself]와 [Distant Applause] 원본 드로잉 |
place1-3에는 2개의 [Little Passing Thoughts] 드로잉 원본이 있어요. [Distant Applause]와 [The Time for Myself]인데요. 혹시 아직 기억이 있다면 이 두 개의 드로잉이 언제 어떻게 영감받아 그려졌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두 개의 드로잉 모두 파리에서 그렸어요. ‘Distance Applause(먼 곳으로부터의 박수)’는 천장에 창문이 달린 아파트에서 지낼 때 그린 그림입니다. 천창으로 비가 잔뜩 쏟아졌는데 그 소리와 박수를 연결 지은 거예요. 종종 제 작품은 논리로부터 조금 벗어날 때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림 속의 인물이 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작은 행복을 기념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The Time For Myself(나를 위한 시간)’ 드로잉은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흥미롭고 새로운 기회로 가득 차 있지만 자신을 위한 시간을 꼭 챙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드로잉에 조언(혹은 생각)을 담을 때에는 무엇보다 저 스스로 필요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
올페오의 작업에는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재료나 기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드로잉’이라는 기법이 가지는 이점이나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근에 포컬 포인트 갤러리(Focal Point Gallery)의 디렉터인 캐서린 스타우트(Katharine Stout)와 드로잉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둘 다 드로잉이란 지진을 가늠하는 작은 기계인 지진계와 같다는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때 진원지는 우리의 뇌와 심장, 논리와 감정 사이의 어딘가에 있고 그 결과물을 종이 위에서 볼 수 있겠지요. |
혹시 드로잉을 할 때 가장 좋아하는 펜이 있나요? 저는 꼭 무조건 언제나 무인양품의 재생지 노트와 0.5mm 젤 잉크 볼펜을 사용합니다. 이 외의 다른 것들은 절대 사용하지 않아요(웃음) |
[Little Passing Thoughts] 드로잉 시리즈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드로잉들은 저의 간단한 생각들을 담은 결과물이에요. 사용된 글도 간단하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 드로잉에 공감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고 기쁩니다. 모두가 이렇게 간단한 형태로 자기 생각을 기념하고, 공유하고, 탐험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올페오 타기우리(문구점, 편의점 과자)
|
이제 이번 전시인 [Little Passing Thoughts in Seoul] 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지금까지 서울은 몇 번 방문해 보셨나요? 지금까지 두 번 방문했습니다. ‘지금까지’라고 물어주셔서 기뻤어요. 이후에도 또 방문할 일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독특한 인상이 있었나요? 작년 겨울, 서울에서 정말 많은 영감을 받은 덕분에 아직도 그때의 경험을 곱씹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이 층층이 쌓인 ‘레이어’가 도드라지게 보였어요. 중심 도로를 달리다 보면 멋진 차와 호화로운 오피스 빌딩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한 겹만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굉장히 정겨운 음식점과 카페, 공간들이 가득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상호작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멋지고 정갈하게 차려입었지만 동시에 소소한 농담이나 작은 배려의 제스처들이 깊이 있게 다가왔어요. 미국 사람은 종종 감정 표현들이 꽤 큼직큼직한 데 반해, 서울에서의 친절은 누군가가 조용히 저의 빈 물컵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
서울에서 그린 드로잉은 어디에서 주로 영감을 받았나요? 특정한 ‘장소’보다는 식사 자리나 장소와 장소를 이동하는 사이에서 시작한 드로잉이 많았습니다. 웃음과 혼란에서도 영감을 받았어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세부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꿈을 산다는 개념, 누가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지 정하는 방식, 소맥을 마는 방법, 그릴에서 흐르는 바비큐 기름을 담는 컵, 길가에 놓인 슬픈 흰 꽃 같은 것들이요. |
서울에서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서울의 중심에 있는 봉은사에 갔을 때 마주했던 멋진 순간이 기억나요. 각자 초를 하나씩 켜기로 했는데 아무도 성냥이나 라이터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라이터를 빌려 초를 하나 켜고, 그 초로 다른 초를 켜기 시작했어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을 얻은 존재가 다른 천 개의 빛을 밝히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 담뱃불을 붙이는 데에 사용될 법한 투박한 플라스틱 라이터와 충만하고 아름다운 의식의 조합이 마치 하나의 멋진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
  거리에서 올페오가 눈여겨 본 '거리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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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페오의 드로잉에서는 함께 기재된 텍스트나 단어 역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 에디션]에는 한글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데요. 혹시 이전에 영어 이외의 언어를 드로잉에 추가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한글로 작업을 한 경험은 어떻게 다가왔는지도 궁금합니다. 영어 이외의 언어로 작업을 해본 것은 처음입니다! 자음이나 모음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 글자 한 글자를 그림처럼 대했어요. 하나의 글자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요. 이 경험을 하고 나니 여행은 우리를 다시 아이처럼 만든다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아졌으니까요. 한 번 질문을 시작하면 사실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걸 잊고 삽니다. 얼음은 왜 미끄러울까요? 감정적인 순간을 마주하면 왜 머리카락과 털이 쭈뼛 설까요? 헬리콥터는 왜 시끄러울까요? |
서울을 포함해 많은 도시들을 다녀보신 것으로 압니다. 각각의 도시는 또 그들만의 문화가 있을 테고요. 하지만 그 안에서 공통점(혹은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주로 작은 것을 눈여겨봅니다. 집마다 놓인 식물, 택시의 백미러에 달린 참(Charm), 학생들이 찢어 내다 버린 스케치, 서버의 이름이 인쇄된 영수증, 커피에 잘못 써진 이름, 실수로 양말에 끼어버린 청바지, 순간적인 눈 맞춤, 휴지에 인쇄된 물방울 무늬 같은 것들이요. 모든 도시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의 톤이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요.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서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참으로 요지경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순간 여기에 함께 있다’는 멋진 사실을 짚어주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말이었어요! |
올페오 타기우리 (Orfeo Tagiuri)
올페오 타기우리(Orfeo Tagiuri)는 영문학과 순수예술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화, 드로잉, 퍼포먼스, 필름, 우드카빙, 애니메이션, 음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지난 겨울 서울을 여행하며 여러 문화를 접하고, 그 경험을 대표작인 'Little Passing Thoughts' 드로잉 시리즈의 일환으로 풀어냈습니다. place1-3에서 진행된 그의 전시를 위해 진행한 아티스트 인터뷰를 읽어보세요. 위트있고 따뜻한 올페오의 시선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국의 런던에서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고 있는 작가 올페오 타기우리(Orfeo Tagiuri) 입니다. 주로 이미지와 단어를 혼합한 작업물을 많이 만들고,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합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들은 시작과 중간, 그리고 결말이 뚜렷한 구성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연결점에서부터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거미줄과 더 닮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마추어’의 독창성에 박수를 보내고, 앨런 캐프로(Allan Kaprow)의 ‘이제는 예술이 아닌 것이 예술보다 더 예술적이다(Now non-art is more art than Art art.)’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Little Passing Thoughts] 라는 드로잉 시리즈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어요. 이 드로잉들은 무엇을 담고 있나요?
제목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각들’을 그린 드로잉이에요. 저는 하루에 한 번, 종이를 앞에 두고 한 시간 정도 자리에 앉아서 제 마음이 자유롭게 허공을 떠돌 수 있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리고 떠다니는 생각의 조각들을 가만히 관찰하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생각이나 아이디어, 관점들을 하나씩 가려내어 그립니다. 조금 엉뚱한 생각들도 많지만 잘 골라내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로 만들어진 드로잉이니 어떻게 보면 ‘레디메이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들이 이미 만들어진 공산품으로 구성된 것처럼요.
이 드로잉 시리즈는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항상 갤러리나 미술관 바깥에 자리한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The Pole Gallery(전봇대 갤러리)’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작품을 길거리에 전시하도록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The New Yorker’ 잡지를 종종 읽었는데, 오로지 만화 때문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요. 2021년 초반부터는 제 드로잉을 ‘The New Yorker’ 매거진에 직접 기고해 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전부 거절당했습니다(웃음). 하지만 드로잉의 선정 여부를 떠나 너무 진지하지 않은 ‘예술 작품’을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 이 드로잉 시리즈를 통해 저만의 재미있고 섬세한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고, 계속해서 작업해 오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꾸준한 연습도 필요하고요. 도움이 되었던 습관이나 방법, 또는 루틴이 있을까요?
최근 드로잉 수업을 들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경험을 하고 그 결과를 살펴보는 수업이었어요.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을,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을 사용하거나, 눈을 감거나, 평소보다 빠르게 그린다든가 하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이 과정을 통해 ‘실수’나 ‘못난’ 작업물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습했습니다. 이러한 받아들임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알아차리고 만들어 내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서 드로잉을 합니다. 이때가 제 마음이 가장 충만하고 탐험 적일 때거든요. 이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는 것도 아침인데, 이때가 제 논리나 언어가 가장 정돈되어 있을 때이기 때문이에요. [Little Passing Thoughts] 드로잉 시리즈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뉴요커(The New Yorker) 잡지를 위한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생각을 걸러내려는 깊은 무의식의 충동을 잠시 멈추고, 가볍게 즐기는 마음을 가지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정기적으로 잡지사에 드로잉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별다른 소식이 없네요! (웃음)
[Little Passing Thoughts]의 드로잉에서는 단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이 단어들에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드로잉 시리즈에서 단어는 어찌 보면 드로잉 자체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것과 언어 뒤에 숨어있는 것의 균형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에요. 제가 ‘꽃’이라는 단어를 말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제가 상상했던 것 과는 아주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겠지요. 이러한 차이는 어떤 단어를 친밀하게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 중간의 갭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The Time for Myself]와 [Distant Applause] 원본 드로잉
place1-3에는 2개의 [Little Passing Thoughts] 드로잉 원본이 있어요. [Distant Applause]와 [The Time for Myself]인데요. 혹시 아직 기억이 있다면 이 두 개의 드로잉이 언제 어떻게 영감받아 그려졌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두 개의 드로잉 모두 파리에서 그렸어요. ‘Distance Applause(먼 곳으로부터의 박수)’는 천장에 창문이 달린 아파트에서 지낼 때 그린 그림입니다. 천창으로 비가 잔뜩 쏟아졌는데 그 소리와 박수를 연결 지은 거예요. 종종 제 작품은 논리로부터 조금 벗어날 때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림 속의 인물이 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작은 행복을 기념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The Time For Myself(나를 위한 시간)’ 드로잉은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흥미롭고 새로운 기회로 가득 차 있지만 자신을 위한 시간을 꼭 챙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드로잉에 조언(혹은 생각)을 담을 때에는 무엇보다 저 스스로 필요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올페오의 작업에는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재료나 기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드로잉’이라는 기법이 가지는 이점이나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근에 포컬 포인트 갤러리(Focal Point Gallery)의 디렉터인 캐서린 스타우트(Katharine Stout)와 드로잉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둘 다 드로잉이란 지진을 가늠하는 작은 기계인 지진계와 같다는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때 진원지는 우리의 뇌와 심장, 논리와 감정 사이의 어딘가에 있고 그 결과물을 종이 위에서 볼 수 있겠지요.
혹시 드로잉을 할 때 가장 좋아하는 펜이 있나요?
저는 꼭 무조건 언제나 무인양품의 재생지 노트와 0.5mm 젤 잉크 볼펜을 사용합니다. 이 외의 다른 것들은 절대 사용하지 않아요(웃음)
[Little Passing Thoughts] 드로잉 시리즈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드로잉들은 저의 간단한 생각들을 담은 결과물이에요. 사용된 글도 간단하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 드로잉에 공감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고 기쁩니다. 모두가 이렇게 간단한 형태로 자기 생각을 기념하고, 공유하고, 탐험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올페오 타기우리(문구점, 편의점 과자)
이제 이번 전시인 [Little Passing Thoughts in Seoul] 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지금까지 서울은 몇 번 방문해 보셨나요?
지금까지 두 번 방문했습니다. ‘지금까지’라고 물어주셔서 기뻤어요. 이후에도 또 방문할 일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독특한 인상이 있었나요?
작년 겨울, 서울에서 정말 많은 영감을 받은 덕분에 아직도 그때의 경험을 곱씹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이 층층이 쌓인 ‘레이어’가 도드라지게 보였어요. 중심 도로를 달리다 보면 멋진 차와 호화로운 오피스 빌딩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한 겹만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굉장히 정겨운 음식점과 카페, 공간들이 가득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상호작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멋지고 정갈하게 차려입었지만 동시에 소소한 농담이나 작은 배려의 제스처들이 깊이 있게 다가왔어요. 미국 사람은 종종 감정 표현들이 꽤 큼직큼직한 데 반해, 서울에서의 친절은 누군가가 조용히 저의 빈 물컵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서울에서 그린 드로잉은 어디에서 주로 영감을 받았나요?
특정한 ‘장소’보다는 식사 자리나 장소와 장소를 이동하는 사이에서 시작한 드로잉이 많았습니다. 웃음과 혼란에서도 영감을 받았어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세부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꿈을 산다는 개념, 누가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지 정하는 방식, 소맥을 마는 방법, 그릴에서 흐르는 바비큐 기름을 담는 컵, 길가에 놓인 슬픈 흰 꽃 같은 것들이요.
서울에서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서울의 중심에 있는 봉은사에 갔을 때 마주했던 멋진 순간이 기억나요. 각자 초를 하나씩 켜기로 했는데 아무도 성냥이나 라이터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라이터를 빌려 초를 하나 켜고, 그 초로 다른 초를 켜기 시작했어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을 얻은 존재가 다른 천 개의 빛을 밝히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 담뱃불을 붙이는 데에 사용될 법한 투박한 플라스틱 라이터와 충만하고 아름다운 의식의 조합이 마치 하나의 멋진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거리에서 올페오가 눈여겨 본 '거리 예술'
올페오의 드로잉에서는 함께 기재된 텍스트나 단어 역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 에디션]에는 한글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데요. 혹시 이전에 영어 이외의 언어를 드로잉에 추가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한글로 작업을 한 경험은 어떻게 다가왔는지도 궁금합니다.
영어 이외의 언어로 작업을 해본 것은 처음입니다! 자음이나 모음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 글자 한 글자를 그림처럼 대했어요. 하나의 글자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요. 이 경험을 하고 나니 여행은 우리를 다시 아이처럼 만든다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아졌으니까요. 한 번 질문을 시작하면 사실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걸 잊고 삽니다. 얼음은 왜 미끄러울까요? 감정적인 순간을 마주하면 왜 머리카락과 털이 쭈뼛 설까요? 헬리콥터는 왜 시끄러울까요?
서울을 포함해 많은 도시들을 다녀보신 것으로 압니다. 각각의 도시는 또 그들만의 문화가 있을 테고요. 하지만 그 안에서 공통점(혹은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주로 작은 것을 눈여겨봅니다. 집마다 놓인 식물, 택시의 백미러에 달린 참(Charm), 학생들이 찢어 내다 버린 스케치, 서버의 이름이 인쇄된 영수증, 커피에 잘못 써진 이름, 실수로 양말에 끼어버린 청바지, 순간적인 눈 맞춤, 휴지에 인쇄된 물방울 무늬 같은 것들이요. 모든 도시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의 톤이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서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참으로 요지경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순간 여기에 함께 있다’는 멋진 사실을 짚어주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말이었어요!
Little Passing Thoughts in Seoul 전시 굿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