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키모리 유리 펜은 이전에도 알고 계셨나요?
올리부 님 카키모리에 대해서는 place1-3에 방문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소개하셨을 때 제가 봤을 거예요. 저 유리 펜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었고, 참 아름답게 생긴 물건이라는 생각했죠. 이전에 다른 곳에서 유리 펜의 존재를 처음 알고 사용해봤어요. 그때 유리 펜을 하나 구매했었고요. 다만 그때는 제가 잉크를 많이 갖고 있지 않아서 호기심이 내려갈 즈음에 place1-3 인스타그램을 보고 다시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2올리부 님의 쓰기 존
저희가 유리 펜에 대한 호기심에 장작을 넣어버렸네요(웃음)
올리부 님 맞아요! 만년필은 워낙 예전부터 써왔으니까 여기저기 브랜드를 많이 알고 있었는데 유리 펜에 대한 건 잘 몰랐거든요. place1-3에 방문했을 때 그 공간에서 유리 펜을 쓰게 해 주신 경험이 저한테는 너무 좋았어요. 제가 다 표현해놓고 가지는 못했지만, 너무너무 행복했거든요. 밤이었고, 오롯이 제가 즐기는 시간대에 마치 내 공간인 듯 경험해본 게 정말 좋았어요. 거기 놓인 잉크 제가 다 써봤거든요. 잉크 색상을 바꿀 때 유리 펜 촉을 닦아주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며 애쓰는 마음이 곧 즐거움이 되더라고요.
제가 결국 유리 펜과 잉크 등등을 구매했잖아요. 사서 집에 오는데 너무 집에 빨리 가고 싶은 거예요. place1-3에서 보여주신 장면을 그대로 내 집에 두고 쓰기 존(zone)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대로요. 내가 조금 전에 느낀 행복감을, 그 평화로움을 언제든지 갖고 싶어서요. 그 이후로도 그곳에서의 시간이 떠올라요.
쿠라마에 지역에서 카키모리의 레터프레스 인쇄를 담당하는 옛 인쇄소
제가 처음 카키모리를 접하고 경험했던 기분을 함께 느끼신 것 같아 정말 기뻐요! 재미있는 카키모리 이야기를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카키모리 노트 등에 레터프레스(Letterpress)를 해 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원래는 쿠라마에 동네가 소상공인들이 많아서 복작복작 무언가를 항상 만드는 동네였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가게가 많이 줄었다고 해요. 특히나 인쇄의 경우 모두 디지털 인쇄를 사용하다 보니 일상적으로 레터프레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싶을 때만 사용하는 거죠. 그래서 수요가 줄어버리는 바람에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도 그곳에서 계속 인쇄를 의뢰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카키모리도 그렇고, 명함을 찍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분들의 활자는 이름이 이미 조합되어 실로 묶여서 서랍에 저장해두시고 있더라고요.
올리부 님 아 정말 너무 가고 싶어요. 이러니 더 좋아져요! 저는 브랜드를 하나 알게 되면 이야기를 막 찾아다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깊숙한 이야기들은 기사나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깃드니까요.
카키모리 매장 근처의 염색 공방이다. 이곳에서 원하는 색상 칩을 가지고
카키모리 잉크스탠드에 방문하면 옷감의 색을 잉크의 색으로 재현할 수 있다.
카키모리는 로컬 커뮤니티와 활발한 교류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카키모리의 대표님이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카키모리 제품들을 지역 소상공인에게 의뢰해서 지역 활성화를 돕는다던지, 그런 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며 사이도 돈독하게 유지하고 계시구요.
올리부 님 저는 작은 비지니스들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목격하고 있어요. 제품이 훌륭해서 브랜드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보이는 것 이상의 것들이 엄청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더욱 좋아져요. 작은 비지니스 하나가 성공하면 그 옆의 가게, 그다음 가게가 줄줄이 성공하는 것처럼 그런 로컬 커뮤니티가 가진 큰 힘은 작은 비지니스 하나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이끌어주는 분들이 꼭 계시거든요. 카키모리 대표님도 그런 분 중 한 분이 아닐까 싶네요.
유리 펜으로 편지를 작성하는 올리부 님
사실 유리 펜은 실제 사용하기보다 예쁜 오브제의 역할을 하기에 좀 더 어울려보이는 제품이에요. 유리 펜을 써 보는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건 공간에서 직접 펜을 써 보셨기 때문이었나요?
올리부 님 네, 맞아요. 예를 들면 어떤 펜은 빨리 뚜껑을 열어 쓸 수 있어야 하고, 어떤 펜은 필압감이 글자를 휘갈겨 쓸 때 잉크가 배어나지 않는 적당함이 있어야 한다던가 하는 각각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카키모리 유리 펜을 사용했던 그 순간과 그 공간에서는 이 펜이 어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기대한 게 아니었어요.
제가 그 행위 자체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로 인한 즐거움들이 분명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 펜을 사용하는 때는 고요한 밤을 누리고 싶을 때 그리고 소중한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을 때라고 저에게 정의되었던 것 같아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 펜을 써야 했고, 이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자동으로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 펜으로 쓴 글을 전하면서 유리 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쓰게 된 것 같아요.
유리 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세척을 위한 물컵이 별도로 필요하다.
글자 한 자를 종이에 얹기 위해 정성 들이는 순간.
과정에서 느껴지는 번거로움을 온전히 즐기는 시간이셨네요.
올리부 님 번거로움이라기보다 애쓴다는 단어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빨리 뚜껑을 열고 쓸 수 있는 펜이 아니기때문에, 내가 정말 애써서 이 편지 한 장을 쓰게 되더라고요. 이 종이에 이 글자 하나를 담기 위해 내가 물도 떴고, 쓰기 존에 놓을 예쁜 종이를 선택했고, 이 종이와 가장 맞는 잉크색을 고르기 위해 잉크를 여러 번 그어보니까요. 그 모든 과정이 제가 이 몇 자를 쓰기 위해 애쓴 시간인 거예요. 번거로운 건 왠지 하기 싫은 일을 해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애쓴다는 건 선물 같은 시간이니까요. 선물할 때 그 친구가 뭘 좋아할까 생각하는 시간마저 선물인 것처럼요.
쓰기 존에서 스탬프로 편지를 마무리하는 올리부 님
유리 펜을 사용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큰 게 아니라도 좋습니다.
올리부 님 제가 이 유리 펜을 쓰기 존에 두었더니 제가 아끼는 문구 친구들이 방문해서 굉장히 써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캘리그라피를 하며 기뻐하고, 어떤 친구들은 그림을 그리고, 저는 필사를 하거나 편지를 썼고요. 결과물의 모습이 달랐지만 쓰면서 즐기는 그 과정에서의 흥분감은 같았어요. 너무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죠.
누구든 저마다의 쓰는 행위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일하는 것을 적기 위함이고, 누구는 그림 그리는 것이 일이어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유리 펜은 그런 목적에 근거한 게 아니라 누릴 마음에 근거한 도구인가 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최적화된 펜이 아님에도 여전히 즐거워하니까요. 그날이 쓰기 존 최대의 성수기였어요. 원래는 나 혼자만 쓰는 자리였는데 서로 줄 서서 기다렸죠. 저 필기 대가 있으니까 더욱요. 다들 다른 데에서 써도 되는데 꼭 저 자리에 앉아서 쓰겠다고 기다렸어요.
카키모리 유리 펜
그렇다면 제품을 사용해보시면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었나요?
올리부 님 개선사항보다는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펜 레스트가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저 펜을 구매하고 바로 다음에 한 것이 펜 레스트를 찾는 거였어요. 사용 후에 적합하게 보관해야 하는 제품인데 마땅한 물건이 없더라고요. 수저 놓는 아이들을 여러 개 사서 미끄러지지 않는지 테스트해 보기도 했어요. 저 유리 펜이 어떻게 놓였을 때 가장 좋고, 가장 어울리는지는 카키모리에서 잘 아실 테니까요. 잉크를 소분할 때 필요한 도구도 예쁘게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펜 레스트라고 펜들을 거치해두는 도구를 몇 개 갖고 있는데, 카키모리 유리펜에게 딱 어울리는 짝꿍을 아직도 못 찾았어요. 제가 만들어 보려고도 했는데, 제 능력 가지고는 역부족이더라구요. 그러니까 카키모리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거 하나였어요. 제품은 너무 좋습니다.
쓰기 존에서 편지를 마무리하는 올리부 님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루가 무섭게 모든 것이 디지털화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날로그 도구인 문구에 관심을 계속 가지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올리부 님 저는 레거시(legacy)를 남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람이 사는 시간이 유한하고, 그 시간의 흔적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는 세상에 위인들만 살다 간 줄 알았어요. 그런 사람들의 기록만 남아있으니까. 그런데 나같이 이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훨씬 많잖아요. 그래도 나의 흔적이 누군가에게는, 내 딸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흔적일 텐데 그 흔적을 어떻게 남기는 게 좋을지 고민했어요.
물론 디지털 세상에서도 그런 레거시를 남길 수 있죠. 페이스북에서 ‘몇 년 전 오늘’ 이런 기능들처럼요. 하지만 디지털에 남겨 둔 레거시는 온전히 제 소유가 아닌 것 같다고 느껴져요. 그것이 남겨진 그 서비스의 서버에 소유된 것 같이 느껴지더라구요. 오랫동안 썼던 블로그가 서비스가 폐지되자 사라져버리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아날로그 기록물들, 사진처럼 물성을 가진 물건들이 오랜 시간 남아준다면 내 삶의 흔적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지털의 발전이 더하면 더할수록 그 가치가 빛나게 될 것 같아요.
쓰는 즐거움 두 번째 이야기 with 올리부(서은아)
글자를 얹는 시간
— Meta(메타) 서은아 상무님 (올리부 님) —
place1-3의 협찬으로 진행되었으며, 카키모리 펜과 잉크를 약 한달간 사용해본 후, 그 과정과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입니다.
카키모리 유리 펜은 이전에도 알고 계셨나요?
올리부 님 카키모리에 대해서는 place1-3에 방문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소개하셨을 때 제가 봤을 거예요. 저 유리 펜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었고, 참 아름답게 생긴 물건이라는 생각했죠. 이전에 다른 곳에서 유리 펜의 존재를 처음 알고 사용해봤어요. 그때 유리 펜을 하나 구매했었고요. 다만 그때는 제가 잉크를 많이 갖고 있지 않아서 호기심이 내려갈 즈음에 place1-3 인스타그램을 보고 다시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저희가 유리 펜에 대한 호기심에 장작을 넣어버렸네요(웃음)
올리부 님 맞아요! 만년필은 워낙 예전부터 써왔으니까 여기저기 브랜드를 많이 알고 있었는데 유리 펜에 대한 건 잘 몰랐거든요. place1-3에 방문했을 때 그 공간에서 유리 펜을 쓰게 해 주신 경험이 저한테는 너무 좋았어요. 제가 다 표현해놓고 가지는 못했지만, 너무너무 행복했거든요. 밤이었고, 오롯이 제가 즐기는 시간대에 마치 내 공간인 듯 경험해본 게 정말 좋았어요. 거기 놓인 잉크 제가 다 써봤거든요. 잉크 색상을 바꿀 때 유리 펜 촉을 닦아주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며 애쓰는 마음이 곧 즐거움이 되더라고요.
제가 결국 유리 펜과 잉크 등등을 구매했잖아요. 사서 집에 오는데 너무 집에 빨리 가고 싶은 거예요. place1-3에서 보여주신 장면을 그대로 내 집에 두고 쓰기 존(zone)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대로요. 내가 조금 전에 느낀 행복감을, 그 평화로움을 언제든지 갖고 싶어서요. 그 이후로도 그곳에서의 시간이 떠올라요.
제가 처음 카키모리를 접하고 경험했던 기분을 함께 느끼신 것 같아 정말 기뻐요! 재미있는 카키모리 이야기를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카키모리 노트 등에 레터프레스(Letterpress)를 해 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원래는 쿠라마에 동네가 소상공인들이 많아서 복작복작 무언가를 항상 만드는 동네였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가게가 많이 줄었다고 해요. 특히나 인쇄의 경우 모두 디지털 인쇄를 사용하다 보니 일상적으로 레터프레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싶을 때만 사용하는 거죠. 그래서 수요가 줄어버리는 바람에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도 그곳에서 계속 인쇄를 의뢰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카키모리도 그렇고, 명함을 찍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분들의 활자는 이름이 이미 조합되어 실로 묶여서 서랍에 저장해두시고 있더라고요.
올리부 님 아 정말 너무 가고 싶어요. 이러니 더 좋아져요! 저는 브랜드를 하나 알게 되면 이야기를 막 찾아다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깊숙한 이야기들은 기사나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깃드니까요.
카키모리 잉크스탠드에 방문하면 옷감의 색을 잉크의 색으로 재현할 수 있다.
카키모리는 로컬 커뮤니티와 활발한 교류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카키모리의 대표님이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카키모리 제품들을 지역 소상공인에게 의뢰해서 지역 활성화를 돕는다던지, 그런 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며 사이도 돈독하게 유지하고 계시구요.
올리부 님 저는 작은 비지니스들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목격하고 있어요. 제품이 훌륭해서 브랜드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보이는 것 이상의 것들이 엄청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더욱 좋아져요. 작은 비지니스 하나가 성공하면 그 옆의 가게, 그다음 가게가 줄줄이 성공하는 것처럼 그런 로컬 커뮤니티가 가진 큰 힘은 작은 비지니스 하나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이끌어주는 분들이 꼭 계시거든요. 카키모리 대표님도 그런 분 중 한 분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유리 펜은 실제 사용하기보다 예쁜 오브제의 역할을 하기에 좀 더 어울려보이는 제품이에요. 유리 펜을 써 보는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건 공간에서 직접 펜을 써 보셨기 때문이었나요?
올리부 님 네, 맞아요. 예를 들면 어떤 펜은 빨리 뚜껑을 열어 쓸 수 있어야 하고, 어떤 펜은 필압감이 글자를 휘갈겨 쓸 때 잉크가 배어나지 않는 적당함이 있어야 한다던가 하는 각각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카키모리 유리 펜을 사용했던 그 순간과 그 공간에서는 이 펜이 어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기대한 게 아니었어요.
제가 그 행위 자체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로 인한 즐거움들이 분명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 펜을 사용하는 때는 고요한 밤을 누리고 싶을 때 그리고 소중한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을 때라고 저에게 정의되었던 것 같아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 펜을 써야 했고, 이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자동으로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 펜으로 쓴 글을 전하면서 유리 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쓰게 된 것 같아요.
글자 한 자를 종이에 얹기 위해 정성 들이는 순간.
과정에서 느껴지는 번거로움을 온전히 즐기는 시간이셨네요.
올리부 님 번거로움이라기보다 애쓴다는 단어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빨리 뚜껑을 열고 쓸 수 있는 펜이 아니기때문에, 내가 정말 애써서 이 편지 한 장을 쓰게 되더라고요. 이 종이에 이 글자 하나를 담기 위해 내가 물도 떴고, 쓰기 존에 놓을 예쁜 종이를 선택했고, 이 종이와 가장 맞는 잉크색을 고르기 위해 잉크를 여러 번 그어보니까요. 그 모든 과정이 제가 이 몇 자를 쓰기 위해 애쓴 시간인 거예요. 번거로운 건 왠지 하기 싫은 일을 해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애쓴다는 건 선물 같은 시간이니까요. 선물할 때 그 친구가 뭘 좋아할까 생각하는 시간마저 선물인 것처럼요.
유리 펜을 사용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큰 게 아니라도 좋습니다.
올리부 님 제가 이 유리 펜을 쓰기 존에 두었더니 제가 아끼는 문구 친구들이 방문해서 굉장히 써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캘리그라피를 하며 기뻐하고, 어떤 친구들은 그림을 그리고, 저는 필사를 하거나 편지를 썼고요. 결과물의 모습이 달랐지만 쓰면서 즐기는 그 과정에서의 흥분감은 같았어요. 너무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죠.
누구든 저마다의 쓰는 행위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일하는 것을 적기 위함이고, 누구는 그림 그리는 것이 일이어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유리 펜은 그런 목적에 근거한 게 아니라 누릴 마음에 근거한 도구인가 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최적화된 펜이 아님에도 여전히 즐거워하니까요. 그날이 쓰기 존 최대의 성수기였어요. 원래는 나 혼자만 쓰는 자리였는데 서로 줄 서서 기다렸죠. 저 필기 대가 있으니까 더욱요. 다들 다른 데에서 써도 되는데 꼭 저 자리에 앉아서 쓰겠다고 기다렸어요.
그렇다면 제품을 사용해보시면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었나요?
올리부 님 개선사항보다는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펜 레스트가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저 펜을 구매하고 바로 다음에 한 것이 펜 레스트를 찾는 거였어요. 사용 후에 적합하게 보관해야 하는 제품인데 마땅한 물건이 없더라고요. 수저 놓는 아이들을 여러 개 사서 미끄러지지 않는지 테스트해 보기도 했어요. 저 유리 펜이 어떻게 놓였을 때 가장 좋고, 가장 어울리는지는 카키모리에서 잘 아실 테니까요. 잉크를 소분할 때 필요한 도구도 예쁘게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펜 레스트라고 펜들을 거치해두는 도구를 몇 개 갖고 있는데, 카키모리 유리펜에게 딱 어울리는 짝꿍을 아직도 못 찾았어요. 제가 만들어 보려고도 했는데, 제 능력 가지고는 역부족이더라구요. 그러니까 카키모리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거 하나였어요. 제품은 너무 좋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루가 무섭게 모든 것이 디지털화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날로그 도구인 문구에 관심을 계속 가지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올리부 님 저는 레거시(legacy)를 남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람이 사는 시간이 유한하고, 그 시간의 흔적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는 세상에 위인들만 살다 간 줄 알았어요. 그런 사람들의 기록만 남아있으니까. 그런데 나같이 이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훨씬 많잖아요. 그래도 나의 흔적이 누군가에게는, 내 딸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흔적일 텐데 그 흔적을 어떻게 남기는 게 좋을지 고민했어요.
물론 디지털 세상에서도 그런 레거시를 남길 수 있죠. 페이스북에서 ‘몇 년 전 오늘’ 이런 기능들처럼요. 하지만 디지털에 남겨 둔 레거시는 온전히 제 소유가 아닌 것 같다고 느껴져요. 그것이 남겨진 그 서비스의 서버에 소유된 것 같이 느껴지더라구요. 오랫동안 썼던 블로그가 서비스가 폐지되자 사라져버리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아날로그 기록물들, 사진처럼 물성을 가진 물건들이 오랜 시간 남아준다면 내 삶의 흔적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지털의 발전이 더하면 더할수록 그 가치가 빛나게 될 것 같아요.
번외편 : 어바웃 올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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