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시는 일과 직업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히로세 타쿠마 님 카키모리의 대표 히로세 타쿠마입니다. 카키모리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호타카의 경영과 카키모리의 전체적인 디렉션을 맡고 있습니다.
카키모리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쓰는 즐거움〕을 찾도록 돕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로세 대표님은 어떤 상황에서 〔쓰는 즐거움〕을 느끼시는지 그 경험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히로세 타쿠마 님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펜과 노트를 꺼내 들고 카키모리의 다음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고 싶은지 적어낼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이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오로지 쓰기만을 위해서 카페에 갔었는데 COVID-19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어요. 얼마나 그 시간이 저에게 소중했고 즐거웠는지 이제야 잘 알 것 같습니다.
카키모리 매장의 다양한 종이에 펜을 시필하는 모습. 어떤 펜을 어떤 종이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쓰기의 경험이 많이 달라진다.
업무를 보실 때도 펜과 노트를 자주 사용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언제 디지털 기기를 손에서 놓고 펜과 노트를 꺼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히로세 타쿠마 님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각에 집중해야 할 때, 그리고 아이디어를 써낼 때입니다. 그럴 때는 펜과 노트만 가볍게 들고 회사를 나와서 근처의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갑니다. 최대한 휴대전화는 보지 않아요. 그렇게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자유롭게 필기합니다. 대부분은 카키모리에 대한 내용이지만 가끔은 자기 자신의 일 등 개인적인 것에 대해서도 쓰고는 합니다.
두 번째는 메모할 때입니다. 사실 저는 대화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풀 컬러로 이미지화할 수 있어야 비로소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누군가와 미팅할 때면 내용을 쉽게 이미지화하기 위해 펜과 노트를 곁에 두고 계속 글자를 적습니다. 제가 적는 메모는 무언가를 기록하여 남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제 머릿속의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실 한 번 적은 메모는 거의 다시 보지 않아요. 다시 읽기 위해서 쓴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이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메모가 가득합니다.
새롭게 출시된 카키모리의 다양한 펜, 잉크, 노트와 편지지. 잉크를 펜에 채워서 사용하거나, 펜촉을 잉크에 담가 사용하는 제품들이다.
자신만의 쓰기 습관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히로세 타쿠마 님 카키모리라고 하면 잉크와 함께하는 펜(유리 펜이나 만년필)의 이미지가 강한 편입니다. 그런 카키모리의 대표이니 저 역시도 그런 펜들을 많이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실제로 저는 평상시에 샤프펜슬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이디어를 짤 때는 제 글을 쓰기도 하고 지우기도 해서, 저에겐 샤프펜슬이 가장 적합한 도구예요. 저는 제가 쓴 글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도 꽤 좋아합니다. 잉크를 사용하는 펜은 편지로 마음을 전할 때만 사용하고 있어요.
카키모리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마을의 작은 공장과 장인들
지난 2020년 2월, 카키모리를 방문했을 때 카키모리가 위치한 쿠라마에 지역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시는 대표님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카키모리가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쓰는 즐거움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데에는 쿠라마에 지역과의 다양한 상호작용 덕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근처의 염색 공방에서 만들어내는 색감을 카키모리에서 잉크의 색상으로 재현한다던가, 카키모리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서 쿠라마에 마을을 돌아볼 수 있다던가 하는 것 처럼요. 약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쿠라마에는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카키모리는 쿠라마에 지역과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 궁금해요.
히로세 타쿠마 님 쿠라마에는 도쿄의 외곽에 자리한 지역입니다. 쿠라마에 사람들은 서로 간의 유대감도 깊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며 반기는 사람들이에요. 마켓 인(Market-In) 보다는 프로덕트 아웃(Product-Out), 타겟은 소비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물건으로 만들고, 그 물건에 공감하는 분들이 거꾸로 찾아와 손님이 되는 형태입니다. 최근에는 꽤 인기 있는 지역이 되어서 장사만을 목적으로 가게를 개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버티지 못하고 1년에서 2년 안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쿠라마에 지역을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은 오너의 확실한 철학이나 애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가게를 원합니다. 그런 곳에는 팬이 생기고, 그 팬이 새로운 팬을 만듭니다. 이곳의 가게들 역시 자신들의 손님을 다른 가게에 소개하기 때문에, 이를 통한 선순환이 일어나는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가게 주인끼리도 매우 사이가 좋고, 술자리도 많은 지역입니다. 사람 간의 유대와 연결을 느낄 수 있는 지역입니다.
쿠라마에의 여러 가게들은 옛부터 자리한 마을 공장의 장인들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카키모리 역시 노트의 부재 대부분을 근처 마을 공장을 통해 수급하고 있습니다. 도쿄라는 대도시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매우 가까이에서 제조를 할 수 있다는 건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카키모리가 가진 제조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은 주변의 직공에게 배웠습니다. 쿠라마에의 마을 공장이나 장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역시 카키모리의 사명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 마켓 인(Market-In) :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방식
* 프로덕트 아웃(Product-Out) : 브랜드가 만들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방식
카키모리의 새로운 붙임 펜 시리즈
카키모리의 펜으로 최고의 쓰기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리와 관심이 필요해요. 다양하고 간편한 쓰기 도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계속해서 손을 타야하는 제품을 만드시는 이유가 있나요?
히로세 타쿠마 님 ‘쓰기’란 매우 넓고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 학생이 공부를 위해 쓰는 것과 제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유로운 발상을 적어가는 것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다른 ‘쓰기’입니다. 디지털 펜이나 타블렛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 갈 것이고, 아마도 사무적인 ‘쓰기’는 모두 디지털로 대체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것이 펜으로 종이에 글자를 적어가는 쓰는 행위의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닥불, 레코드, 핸드 커피 그라인더와 같이 비효율적이지만 피지컬하고, 또 아날로그한 것들은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만큼 더욱 주목을 받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시간 속에서 새롭게 재단장하여 선보이는 신제품은 [ 붙임 펜 ] 시리즈입니다. 빠르게 디지털화되는 세상이기에 한 편으로는 매우 니치한 제품이지만,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커다란 흐름에 적합한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편리함을 내세운 제품들과는 반드시 차별화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카키모리의 새로운 잉크 병 디자인. 프로덕트 디자이너 코이즈미 마코토(Koizumi Makoto)씨와 함께한 제품이다.
오히려 '더욱 깊게 아날로그하기'를 목표로 한다니 흥미롭습니다. 말씀하신 새로운 제품들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히로세 타쿠마 님 카키모리의 컨셉은 [ 즐겁게 쓰는 사람 ] 입니다. 쓰는 행위로 생각과 마음이 전달되고, 이에 따라 서로가 더욱 깊게 연결되는 풍부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펜, 잉크, 노트, 레터의 4개 품목을 만들고 있어요. 신제품을 기획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새로운 잉크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부터 사용하던 잉크병은 기성품 중에 고른 형태이기 때문에 사용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조금 느끼고 있었습니다. 병의 입이 좁고, 세로가 긴 만큼 쓰러지기 쉬운 형태였기 때문이에요. 최근에는 완전히 같은 병을 사용한 만년필 잉크가 타사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잉크병을 우리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코이즈미 마코토(Koizumi Makoto)씨와 함께 병 만들기에 착수했습니다. 동시에 잉크를 사용하는 펜도 조금 새롭게 접근해보았어요.
일상생활에서 ‘쓰기’의 빈도가 줄어든 시대이기에 더욱 ‘쓰는 경험’을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펜대에 분리형 펜촉을 꽂고, 잉크에 펜촉을 담갔다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쓰기 도구인 [ 붙임 펜 ] 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붙임 펜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펜 레스트를 만들었고요. 아직 이건 1탄이에요. 카키모리는 잉크를 직접 넣거나 잉크에 펜촉을 담가서 사용하는 펜뿐만 아니라 다양한 ‘쓰기’의 방식을 마주하며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갈 겁니다.
카키모리의 새로운 붙임 펜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펜 레스트. 펜을 사용한 후 이 곳에 올려두면 보관이 용이하다
말씀하신 내용을 들어보면 카키모리 제품들에 정말 커다란 변화이자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져요. 이 변화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히로세 타쿠마 님 확실히 COVID-19가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소매점으로 시작한 카키모리는 도매(Wholesale) 판매보다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에 더욱 집중을 해왔어요. COVID-19 이전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카키모리의 제품을 경험하고 구매를 하시는 분들의 비중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상의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오프라인 매장으로의 고객을 모으는 것이 어려워졌어요. 지금까지의 카키모리의 성공이 무너져내린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시기를 보내다 보니 파트너를 통해 제품을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파트너와 협력하여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작은 단위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대담하게 물건을 만들어보자 싶었어요. 도전이었지요. 일단은 카키모리가 정말 만들고 싶은 걸 만들자는 확실한 도전의 마음가짐에서부터 출발하여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자면, 이번에 코이즈미 마코토씨와 함께 새롭게 만든 잉크병은 생산 단위가 5만 개입니다. 이 정도의 수량은 도저히 카키모리 자체만으로는 판매할 수 없으므로 이번에는 place1-3과 같은 전 세계의 파트너와 함께 제품을 전달해보고자 합니다.
카키모리의 새로운 잉크 병 디자인
새로운 라인업을 만들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히로세 타쿠마 님 잉크병을 생산하는 엔지니어가 해준 이야기에요. 지금까지 새로운 병이 완성되면 그의 딸에게 매번 보여줬던 것 같아요. 평소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 병은 “귀여워! 갖고 싶어!”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딸에게 칭찬받은 것이 정말 기뻤는지, 그 여세를 몰아 이 병을 유리병 어워드에 내놓겠다고 합니다. 아주 귀엽고 따뜻한 에피소드 아닌가요! (http://glassbottle.org/award)
이번에 고심하여 만드신 새로운 제품들은 쓰기 경험을 어떻게 더 즐겁게 만들어주나요?
히로세 타쿠마 님 디지털화가 한층 더 진행됨에 따라 화면 너머로 간단히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해 정중히 마음을 전하는 일은 오히려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 역시 줄어버린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소하게 느끼실 수 있는 붙임 펜을 신제품으로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상품을 기획할 때 PC도 휴대전화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작 난로에 불을 붙이고, 커피 원두를 드립하고, 레코드 음반을 켜고, 펜에 잉크를 묻혀 편지나 일기를 쓰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 순간은 꽤나 비일상적이고 아주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너무나 풍족하고 즐거운 시간일 것이기에 이를 모두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카키모리의 히로세 타쿠마 대표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히로세 타쿠마 님 한국은 일본보다 디지털화나 온라인화가 앞서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의 여러분이 체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은 앞으로의 일본에서도 일어날 것으로 생각해요. 그렇기에 이번 신제품들은 어쩌면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조금 더 빨리 이해될지도 모릅니다. 꼭 여러분들의 피드백을 받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여러분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쓰는 즐거움 두 번째 이야기 with 히로세 타쿠마
쓰는 즐거움을 향한 고민
— 카키모리 히로세 타쿠마 대표님 —
이 아티클의 모든 사진은 카키모리로부터 제공되었습니다. All images in this article are provided from Kakimori
지금 하시는 일과 직업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히로세 타쿠마 님 카키모리의 대표 히로세 타쿠마입니다. 카키모리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호타카의 경영과 카키모리의 전체적인 디렉션을 맡고 있습니다.
카키모리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쓰는 즐거움〕을 찾도록 돕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로세 대표님은 어떤 상황에서 〔쓰는 즐거움〕을 느끼시는지 그 경험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히로세 타쿠마 님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펜과 노트를 꺼내 들고 카키모리의 다음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고 싶은지 적어낼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이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오로지 쓰기만을 위해서 카페에 갔었는데 COVID-19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어요. 얼마나 그 시간이 저에게 소중했고 즐거웠는지 이제야 잘 알 것 같습니다.
업무를 보실 때도 펜과 노트를 자주 사용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언제 디지털 기기를 손에서 놓고 펜과 노트를 꺼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히로세 타쿠마 님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각에 집중해야 할 때, 그리고 아이디어를 써낼 때입니다. 그럴 때는 펜과 노트만 가볍게 들고 회사를 나와서 근처의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갑니다. 최대한 휴대전화는 보지 않아요. 그렇게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자유롭게 필기합니다. 대부분은 카키모리에 대한 내용이지만 가끔은 자기 자신의 일 등 개인적인 것에 대해서도 쓰고는 합니다.
두 번째는 메모할 때입니다. 사실 저는 대화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풀 컬러로 이미지화할 수 있어야 비로소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누군가와 미팅할 때면 내용을 쉽게 이미지화하기 위해 펜과 노트를 곁에 두고 계속 글자를 적습니다. 제가 적는 메모는 무언가를 기록하여 남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제 머릿속의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실 한 번 적은 메모는 거의 다시 보지 않아요. 다시 읽기 위해서 쓴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이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메모가 가득합니다.
자신만의 쓰기 습관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히로세 타쿠마 님 카키모리라고 하면 잉크와 함께하는 펜(유리 펜이나 만년필)의 이미지가 강한 편입니다. 그런 카키모리의 대표이니 저 역시도 그런 펜들을 많이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실제로 저는 평상시에 샤프펜슬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이디어를 짤 때는 제 글을 쓰기도 하고 지우기도 해서, 저에겐 샤프펜슬이 가장 적합한 도구예요. 저는 제가 쓴 글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도 꽤 좋아합니다. 잉크를 사용하는 펜은 편지로 마음을 전할 때만 사용하고 있어요.
지난 2020년 2월, 카키모리를 방문했을 때 카키모리가 위치한 쿠라마에 지역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시는 대표님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카키모리가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쓰는 즐거움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데에는 쿠라마에 지역과의 다양한 상호작용 덕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근처의 염색 공방에서 만들어내는 색감을 카키모리에서 잉크의 색상으로 재현한다던가, 카키모리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서 쿠라마에 마을을 돌아볼 수 있다던가 하는 것 처럼요. 약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쿠라마에는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카키모리는 쿠라마에 지역과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 궁금해요.
히로세 타쿠마 님 쿠라마에는 도쿄의 외곽에 자리한 지역입니다. 쿠라마에 사람들은 서로 간의 유대감도 깊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며 반기는 사람들이에요. 마켓 인(Market-In) 보다는 프로덕트 아웃(Product-Out), 타겟은 소비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물건으로 만들고, 그 물건에 공감하는 분들이 거꾸로 찾아와 손님이 되는 형태입니다. 최근에는 꽤 인기 있는 지역이 되어서 장사만을 목적으로 가게를 개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버티지 못하고 1년에서 2년 안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쿠라마에 지역을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은 오너의 확실한 철학이나 애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가게를 원합니다. 그런 곳에는 팬이 생기고, 그 팬이 새로운 팬을 만듭니다. 이곳의 가게들 역시 자신들의 손님을 다른 가게에 소개하기 때문에, 이를 통한 선순환이 일어나는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가게 주인끼리도 매우 사이가 좋고, 술자리도 많은 지역입니다. 사람 간의 유대와 연결을 느낄 수 있는 지역입니다.
쿠라마에의 여러 가게들은 옛부터 자리한 마을 공장의 장인들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카키모리 역시 노트의 부재 대부분을 근처 마을 공장을 통해 수급하고 있습니다. 도쿄라는 대도시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매우 가까이에서 제조를 할 수 있다는 건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카키모리가 가진 제조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은 주변의 직공에게 배웠습니다. 쿠라마에의 마을 공장이나 장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역시 카키모리의 사명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 마켓 인(Market-In) :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방식
* 프로덕트 아웃(Product-Out) : 브랜드가 만들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방식
카키모리의 펜으로 최고의 쓰기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리와 관심이 필요해요. 다양하고 간편한 쓰기 도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계속해서 손을 타야하는 제품을 만드시는 이유가 있나요?
히로세 타쿠마 님 ‘쓰기’란 매우 넓고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 학생이 공부를 위해 쓰는 것과 제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유로운 발상을 적어가는 것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다른 ‘쓰기’입니다. 디지털 펜이나 타블렛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 갈 것이고, 아마도 사무적인 ‘쓰기’는 모두 디지털로 대체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것이 펜으로 종이에 글자를 적어가는 쓰는 행위의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닥불, 레코드, 핸드 커피 그라인더와 같이 비효율적이지만 피지컬하고, 또 아날로그한 것들은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만큼 더욱 주목을 받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시간 속에서 새롭게 재단장하여 선보이는 신제품은 [ 붙임 펜 ] 시리즈입니다. 빠르게 디지털화되는 세상이기에 한 편으로는 매우 니치한 제품이지만,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커다란 흐름에 적합한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편리함을 내세운 제품들과는 반드시 차별화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욱 깊게 아날로그하기'를 목표로 한다니 흥미롭습니다. 말씀하신 새로운 제품들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히로세 타쿠마 님 카키모리의 컨셉은 [ 즐겁게 쓰는 사람 ] 입니다. 쓰는 행위로 생각과 마음이 전달되고, 이에 따라 서로가 더욱 깊게 연결되는 풍부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펜, 잉크, 노트, 레터의 4개 품목을 만들고 있어요. 신제품을 기획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새로운 잉크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부터 사용하던 잉크병은 기성품 중에 고른 형태이기 때문에 사용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조금 느끼고 있었습니다. 병의 입이 좁고, 세로가 긴 만큼 쓰러지기 쉬운 형태였기 때문이에요. 최근에는 완전히 같은 병을 사용한 만년필 잉크가 타사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잉크병을 우리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코이즈미 마코토(Koizumi Makoto)씨와 함께 병 만들기에 착수했습니다. 동시에 잉크를 사용하는 펜도 조금 새롭게 접근해보았어요.
일상생활에서 ‘쓰기’의 빈도가 줄어든 시대이기에 더욱 ‘쓰는 경험’을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펜대에 분리형 펜촉을 꽂고, 잉크에 펜촉을 담갔다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쓰기 도구인 [ 붙임 펜 ] 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붙임 펜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펜 레스트를 만들었고요. 아직 이건 1탄이에요. 카키모리는 잉크를 직접 넣거나 잉크에 펜촉을 담가서 사용하는 펜뿐만 아니라 다양한 ‘쓰기’의 방식을 마주하며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갈 겁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들어보면 카키모리 제품들에 정말 커다란 변화이자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져요. 이 변화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히로세 타쿠마 님 확실히 COVID-19가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소매점으로 시작한 카키모리는 도매(Wholesale) 판매보다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에 더욱 집중을 해왔어요. COVID-19 이전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카키모리의 제품을 경험하고 구매를 하시는 분들의 비중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상의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오프라인 매장으로의 고객을 모으는 것이 어려워졌어요. 지금까지의 카키모리의 성공이 무너져내린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시기를 보내다 보니 파트너를 통해 제품을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파트너와 협력하여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작은 단위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대담하게 물건을 만들어보자 싶었어요. 도전이었지요. 일단은 카키모리가 정말 만들고 싶은 걸 만들자는 확실한 도전의 마음가짐에서부터 출발하여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자면, 이번에 코이즈미 마코토씨와 함께 새롭게 만든 잉크병은 생산 단위가 5만 개입니다. 이 정도의 수량은 도저히 카키모리 자체만으로는 판매할 수 없으므로 이번에는 place1-3과 같은 전 세계의 파트너와 함께 제품을 전달해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라인업을 만들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히로세 타쿠마 님 잉크병을 생산하는 엔지니어가 해준 이야기에요. 지금까지 새로운 병이 완성되면 그의 딸에게 매번 보여줬던 것 같아요. 평소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 병은 “귀여워! 갖고 싶어!”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딸에게 칭찬받은 것이 정말 기뻤는지, 그 여세를 몰아 이 병을 유리병 어워드에 내놓겠다고 합니다. 아주 귀엽고 따뜻한 에피소드 아닌가요! (http://glassbottle.org/award)
이번에 고심하여 만드신 새로운 제품들은 쓰기 경험을 어떻게 더 즐겁게 만들어주나요?
히로세 타쿠마 님 디지털화가 한층 더 진행됨에 따라 화면 너머로 간단히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해 정중히 마음을 전하는 일은 오히려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 역시 줄어버린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소하게 느끼실 수 있는 붙임 펜을 신제품으로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상품을 기획할 때 PC도 휴대전화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작 난로에 불을 붙이고, 커피 원두를 드립하고, 레코드 음반을 켜고, 펜에 잉크를 묻혀 편지나 일기를 쓰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 순간은 꽤나 비일상적이고 아주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너무나 풍족하고 즐거운 시간일 것이기에 이를 모두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히로세 타쿠마 님 한국은 일본보다 디지털화나 온라인화가 앞서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의 여러분이 체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은 앞으로의 일본에서도 일어날 것으로 생각해요. 그렇기에 이번 신제품들은 어쩌면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조금 더 빨리 이해될지도 모릅니다. 꼭 여러분들의 피드백을 받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여러분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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