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좋은 종이의 힘

트롤스페이퍼 브랜드 인터뷰


BRAND INTERVIEW | TROLLS PAPER

좋은 종이의 힘



트롤스페이퍼는 무엇을 만들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인가요?

트롤스페이퍼는 그래픽 디자이너 최지철과 공간디자이너 원지은이 만나 2018년 7월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창작자들에게 창작과 영감의 도구가 되는 제품을 제작하는 스테이셔너리 브랜드입니다. 우리는 좋은 종이에서 느낄 수 있는 촉감과 색감을 좋아하고, 기계적인 정교함보다는 수작업의 만듦새 지향하고 있어요. 많은 창작자들이 더 가치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으로 일상의 도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트롤스페이퍼의 시작점이 궁금해요. 지금처럼 성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도 궁금하고요.

저희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지철님은 브랜드 디자이너, 저는 공간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공간 브랜딩 작업을 함께한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서로 힘을 합쳐 창작물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요.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이나 추구미와 같은 미적 감각, 감성적인 부분이 잘 통했고요. 그래서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시간이 쌓이다보니 '스스로 만들고 쌓아갈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 커졌어요. 사적인 욕심으로는 평소에 사용해 보지 못한 종이 샘플들을 마음껏 활용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렇다면 이참에 좋아하는 종이를 마음껏 써서 창작자에게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죠.

그렇게 지류 문구를 만들기 시작했고, <트롤스페이퍼>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트롤은 북유럽신화의 나오는 무민과 같은 ‘트롤스'’을 상상했어요. 아주 조그만 존재이지만 고집스럽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이뤄가는 성향이 닮아있다고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예요. 타협 하지 않고 만들어낸 제품으로 브랜드를 런칭하기까지 약 2년 정도 걸렸어요. 그 이후 카탈로그를 만들어 우리의 제품을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오프라인 스토어들을 쭉 찾아보고 무작정 메일을 보냈어요. 감사하게도 저희가 만드는 제품을 좋게 바라 봐주시고 소개해주시는 좋은 파트너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런칭과 동시에 매 해마다 디자인 페어, 홈테이블 페어와 마켓 등 저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뭐든 참가했어요. 그리고 해외 바이어와 메종 오브제 박람회 참여를하면서 유럽에서 소개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어요. 한 발 한 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6년차 브랜드가 되었네요.

지난번 <나란히 상점> 인터뷰에서도 말한적이 있는데요, <트롤스페이퍼>는 시간이 지나도 오랫동안 유지되는 브랜드였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지금보다 나이 들었을 때에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어요.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 역사가 깊지 않은 신생 브랜드가 마주해야 하는 과제들은 분명히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의 분명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트롤스페이퍼는 창작자의 영감의 도구가 되는 제품을 제작하고 있어요. ‘창작자를 위한 물건’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런 제품을 만드는지 궁금해요.

저희가 생각하는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은 이미 그들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고, 동시에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노트의 내지 디자인이나 제품 사용 방법에 대한 가이드를 최소화한 것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 대신 제품을 사용할 때의 필기감이나 촉감처럼 보이지 않는 감각의 대한 부분을 채워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고 에센셜한 디자인을 추구하는데, 이는 제품의 만듦새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카프리스노트 (제품 링크)

트롤스페이퍼는 '좋은 종이의 힘'을 믿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트롤스페이퍼에게 있어서 ‘좋은 종이’란 무엇인가요?

수많은 처리 과정이 쌓여 만들어진 종이의 질감, 공간 속 나무의 결, 벽지나 타일의 촉감 등 재료 본연의 속성에 항상 더 관심을 가져왔어요. 무언가 채워져 있는 캔버스나 공간보다 ‘마감이 깔끔하다’거나, ‘색감이 좋다’라는 데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오히려 좋은 소재나 종이의 질감이 도드라지는 무언가를 보았을 때 더욱 압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는 아무리 여백이 많더라도 비어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더라고요. 또, 종이를 선택할 때에는 종이를 만든 기업의 이야기까지 자세히 공부하는 편이예요. 제작 과정에서 친환경과 반대되는 부분은 없는지, 품질은 균등한지, 공장마다 FSC 인증을 받았는지 하는 부분들이요. 그렇게 제조사에 대해 깊게 알게 되었을 때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종이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제품을 만들 때는 각각의 제품의 캐릭터를 부여하고 종이를 탐구하며 기획해요. 각 쓰임새에 맞는 최적의 종이를 선택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에센셜 노트의 경우 기본의 충실한 고요한 노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용자들의 개성을 담을 수 있는 아직 에센셜한 노트를 만들고자 했어요. 표지는 코튼의 포슬포슬한 미색, 내지는 시각적인 편안함을 주는 미색의 종이, 기록이 돋보이는 가이드가 중요했습니다. 하나씩 우리가 원하는 제품의 느낌을 생각하며 정해 나가요. 내지의 경우 현대적인 필기구와 가장 궁합이 좋은 종이를 모아 필기 테스트를 해요. 종이의 색상과 질감, 페이지를 넘길때 바스락 거림, 각각의 필기구를 사용했을 때의 필기감 같은 미묘한 디테일로 ‘좋은 종이’를 선택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종이는 코팅이 되지 않은 코튼(cotton)지로, 만지면 따뜻한 촉감이 느껴지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플레인 노트 : 그리드 (제품 링크)

지난 2022년 <나란히 상점>을 통해 처음 인사를 나누고, 1년 반의 시간이 지나 ‘시리즈'의 브랜드로 함께하게 되셨습니다. 그 동안 트롤스페이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22년 <나란히 상점>을 통해 트롤스페이퍼를 소개하게 되어 즐거웠어요. 플레이스1-3팀에서 준비해주신 따스한 공간에서의 경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도 기록해주신 분들이 있어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희는 꾸준히 제품을 만들며 지냈습니다. <나란히 상점>에서 소개했던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스티커 조각들도 만들었고요. 올해에는 레터프레스기법으로 메시지카드와 편지지도 만들었어요. 레터프레스는 금속 활판 으로 인쇄될 부분의 판면을 만들고 상단의 잉크를 머금고 롤러에 잉크를 전해주면 동판의 붙은 면이 인쇄기의 압력을 가해 잉크가 지면에 닿게 하는 고전적인 인쇄 기법이예요. 지면에 닿는 선과 면이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어  깊이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어요. 저희는 조금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색다른 결과물을 전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어요. 올해는 오랜만에 오프라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운치와 멋이 흐르는 정동길 근대문화 유산으로 인정된 건물을 만나 9월에 팝업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입니다 :-)



편지지 세트 (제품 링크)


두 디렉터님의 일터의 책상과 집의 책상 풍경(혹은 환경)은 어떻게 다른가요?

일터의 책상은 오롯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물건들로 가득해요. 먼저 저는 책상에 앉아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오일 디퓨저를 틀어 놓은 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투두리스트 작성을 해요. 일터의 책상은 제품을 제작할 때 사용되는 종이샘플, 인쇄 샘플, 샘플링 노트, 모래시계가 놓여져 있어요. 차분히 내려오는 가는 모래를 보면서 투두리스트를 작성하면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더라고요. 지철 실장의 책상 위에는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노트 샘플과 물건들이 올라 와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정리가 안된 자유분방한 느낌이지만 나름의 자신만의 규칙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하네요(웃음).

집의 책상은 온전히 저희가 좋아하는 취미 도구들로 가득해요. 카메라, 만년필, 잉크병,빈티지 연필이 줄지어 배치 되있어요. 지철님은 빈티지 만년필을 좋아해서 만년필을 모으고 있고요. 덕분에 올해 만년필과 궁합이 좋은 노트도 기획하게 되었네요. 또 만년필 잉크도 모으고 있어서 색감이 예쁜 교토의 소리 잉크와 이로시주쿠 잉크, 그리고 저희가 직접 조색해 만든 잉크들이 줄지어 배치되있네요.

아, 저는 올 초 팟캐스트를 통해 빈티지 연필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빈티지 연필을 하나 둘씩 사서 모으고 있는데요, 만년필과 비슷하게 각각의 연필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고 시대마다 만듦새의 공법이 달라서 겉보기엔 같아 보여도 쓰다보면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더라고요. 최근에는 집의 책상에서 연필을 한 자루씩 칼로 깍아서 사용하고 있어요. 오롯이 연필을 깎는것에 몰입하며 차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재미있어요. 잘 깎은 연필의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필사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일터의 책상에서 가장 오랜 시간 유용하게 사용한 트롤스페이퍼의 제품은 무엇인가요?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인지, 어떤 이유에서 가장 오래 사용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투두지은’이라고 불릴 만큼 매일 해야 할 일 리스트업 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일정을 살피며 사용하기 좋은 연도 다이어리와 투두리스트를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카프리스 노트에는 각각의 색지로 분류가 되어있어, 샘플 종이와 제작노트로 사용하고 있어요. 지철님은 드로잉노트를 제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자유롭게  스케치하기를 좋아해서 그림 그리고 끄적끄적 생각을 적기에 가장 좋다고 해요.


카프리스노트 (제품 링크)

좋은 소재의 물건,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물건이 두 디렉터님의 일의 시간을 어떻게 돕나요? 혹 관련하여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마음에 드는 좋은 소재의 물건,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물건을 사용하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미하듯 물건을 음미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고양된 마음이 들면서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구요. 또, 잘 만들어진 물건들은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공법으로 만들어졌는지,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 보다 보면 점점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해요. 예를 들어 저희는 빈티지 만년필과 빈티지 연필에 푹 빠진 채 지냈는데요. 덕분에 올해 예정인 잉크 프루프 노트를 만들게 되었어요. 만년필과 사용하기에 궁합이 좋은 노트인데, 가장 최적의 종이를 테스트해서 만들게 되었고, 함께 사용할 예쁜 색상의 잉크도 준비하고 있어요. 이렇듯 좋은 소재의 잘 만들어진 물건은 오감을 자극 하고, 새로운 창작을 돕는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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