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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연구소와 나무 #1

물건연구소 임정주 대표와 김순영 대표

물건연구소 김순영 대표와 임정주 대표



물건연구소를 처음 시작하시고 지금까지 5년 정도가 흘렀는데, 시작하실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을까요?

"시작할 땐 브랜드였어요. 지금은 브랜드를 잠시 멈추고 클라이언트 작업이나 전시를 통해 작품을 보여주는 스튜디오의 개념으로 변한 것이 가장 커요."


브랜드에서 스튜디오로 변화하면서 작업하시는 과정도 많이 변하셨을 것 같아요.

“원래 브랜드를 운영했을 때 가장 신경 썼던 건 생산성이에요. 얼마나 빨리 만들고, 얼마나 쉽게 만들고,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했죠.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는 만드는 과정이 짧은 걸 했다면, 스튜디오 작업을 하게 되면서 생각의 과정도 길어지고 만드는 과정도 길어졌어요. 빨리 만드는 게 아니라 오래 걸려도 내 색깔이 잘 담긴 물건을 만들어야겠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였고요.”



물건연구소 작업실 입구

성북동에 위치한 물건연구소 작업실의 입구



그렇게 브랜드에서 스튜디오로 변경하신 이유가 있나요?

“두 명이 브랜드를 운영하기에는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요. 디자인해야 하고, 기획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마케팅, 홍보, CS 관리, 일정관리, 재고관리, 온라인 관리 등등… 그걸 저희끼리 전부 다 하려고 하니까 할 일이 너무 많았던 거에요. 물론 초반에는 그 부분을 다른 곳에서 맡아 진행해주시며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요. 물건에 신경 쓰려고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다른 거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게 아쉬웠어요. 그래서 좀 더 물건에 신경을 쓸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place1-3에서 진행하셨던 전시나 최근 Artichoke Fresh Prints에서 진행하셨던 전시에서처럼 나무가 아닌 다른 재료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신 것도 그런 생각의 변화에 기반을 둔 결과였나요?

“원래부터 소재에 관한 관심은 아주 많았어요. 파이버글라스와 폴리우레탄 러버는 10년 전부터 사용해보고 싶었던 소재에요.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서 사용해보지 못했을 뿐이죠. 지금까지 나무라는 재료만을 계속해서 사용해오다 보니 조금 다른 재료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최근 재료의 범주를 확장하시기 전까지 5년 동안 나무로 작업하시면서, 나무에 대한 물건연구소만의 관점이나 생각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보셨을 텐데요. 물건연구소가 바라보는 나무란 어떤 소재인가요?

“나무는 보통 건조되어야만 쓸 수 있는 소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나무 본연의 소재 성질은 틀어지고 색이 변하고, 환경에 따라 쉼 없이 변화하는 거에요. 그걸 성질을 꾹꾹 눌러 재료로 쓰기 위해 가공하는 거죠. 본래 나무라는 건 그것과는 반대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 저희가 나무로 갈라짐을 표현하려고 하는 이유도 나무는 원래 그런 성질을 갖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예요. 물론 아직도 너무 어렵긴 해요. 나무는 갈라지면 하자가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게끔 지금까지 인식됐으니까. 그 인식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게 저희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해요.”



물건연구소 작업실에 쌓여있는 나무

물건연구소 작업실 한 켠에 쌓여있는 나무들



대다수 사람이 가진 나무 제품에 대한 인식과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거네요. 그렇게 생각하시게 된 구체적인 경험이나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팔만대장경이 원래 해인사에 있다가 일본강점기 때 다른 곳으로 옮겨졌었는데, 목판에 벌레가 생기고 썩어서 다시 돌아왔다고 하잖아요. 해인사의 통풍이 완벽해서인 것도 있겠지만, 나무를 써서 작업해본 결과 그곳에서 작업한 나무는 거기에 있을 때가 가장 완벽해요.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몇십 년 동안 두들기며 만들었을 거잖아요. 그러니 다른 데로 옮기는 순간 나무가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해버리는 거죠.

     noneloquent 작품도 저희 공방에 1년 반 동안 있었는데도 변함이 없는데, 다른 곳으로 옮기자마자 변해요. 저희 공간에서의 갈라짐이 여기에서는 최대치인 거예요. 그래서 ‘아, 괜찮겠구나’ 하고 작품을 보내면 더 갈라져 버리는 거죠. 이동해서 자리 잡은 곳의 습도나 사람의 생활방식이 어떤가에 따라서 적응하며 변화하니까요.

     어떤 한 선생님께서 10년 건조된 나무로 그릇을 작업해서 주셨어요. '이건 10년 말렸어. 절대 안 휘어.'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셨는데, 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선생님 호언장담하지 마시라고 웃으며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200년 300년 된 고재… 이건 건조가 완벽하다, 절대 틀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결국엔 다 틀어지더라고요. 선생님들께 이야기 들어보면 나무에 수놈과 암놈이 있다고 하시는데, 수놈이냐 암놈이냐에 따라서도 크랙이나 휘어짐이 다르다고도 하세요. 저희는 아직 구분하지는 못하지만요. 결국, 나무를 하면 할수록 갈라지는 게 당연하고 변화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돼요.

     변화되는 게 정말 싫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나무의 숨구멍을 다 막아버리면 돼요. 옻칠이나 우레탄으로 다 덮어버리면 되는 거죠. 근데 만약에 아직 생나무여서 덜 건조된 상태의 나무를 우레탄으로 막아버리면 안에서 곰팡이가 퍼져요. 저희도 다 깨보고 알았어요. 살아있는 건데 숨구멍을 막아버리니까 겉은 멀쩡해도 안은 새카맣게 곰팡이가 피어버린 거죠. 그러니까 나무는 그냥 그게 나무인 거에요. 그걸 안 틀어지게 막겠다는 건 너무 어려운 시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솔직히 그런 변화를 겪고 싶지 않으면 플라스틱 쓰라는 게 저희 철학 중 하나이기도 해요.

     아, 한 가지 재밌는 건 벼락 맞은 나무는 절대로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대요. 벼락을 나무가 맞으면 전기가 온몸에 흐르면서 나무의 모든 수분이 한꺼번에 다 날아간대요. 그러면서 나무의 성분이 바뀌는 거죠. 그래서 절대로 변형이 안 일어난대요. 나무가 죽으면서 크랙이 한 번에 가고, 손상이 간부분을 다 걷어내고 나면 그 나무로 만든 것은 절대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 거죠. 그래서 벼락 맞은 나무에 선생님들이 환호하신대요. 그 나무를 잘게 나눠서 몇십만 원 몇백만 원에 판매해요. 그래서 선생님들 사이에서 어디 나무에 벼락 맞았다더라 하면 그 지역에 '소문 듣고 왔습니다' 하시는 거래요. 나무만 수집하시는 분들은 마을 이장님들 막걸리 사드리면서 이 나무 죽으면 당신한테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고 하신다더라고요.”



물건연구소 작업실 한 켠에 세워진 나무들

물건연구소 작업실 한 켠에 세워진 나무 판재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그냥 나무라는 소재의 특성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변칙성 때문에 나무라는 소재가 흥미로워지기도 하지만 나무를 다뤄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어려운 소재이기도 하겠네요. 무엇을 배우든지 마찬가지이겠지만 경험을 통해서 알아내거나,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는 이상 어떠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전통공예를 한다고 하면 1대를 걸러서 나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요. 내가 수집한 나무는 내 제자한테 다 주는 거에요. 내가 지금 쓰는 나무도 내 스승님이 물려주신 나무로 작업하는 거죠. 하지만 요즘은 그 역사가 끊긴 게 많아서 그런 경우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그에 반해 일본은 3대에 걸쳐 나무를 모은다고 해요. 그만큼 건조를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 긴 시간 동안 기술도 쌓이고, 습도계산도 되어있고, 언제 깎아야 하는지, 언제 말려야 하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어떤 칠을 해야 하는지, 어떤 크기로 가공을 해야 하는지 다 기록되어있어요.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에서 도공들을 많이 끌고 갔잖아요, 그리고 끌려간 도공들이 정착한 마을이 아리타 마을이고요. 그때 가장 일본인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에 하나가, 이 도공들이 이 모양을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일본인들의 정서상 이걸 왜 만들고, 어떻게 만들고, 무슨 크기로 만드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게 없는데도 계속 예쁜 게 만들어지는 거에요. 민예론의 창시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백자를 좋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해요. 일본의 도공들은 계산적으로 접근해서 형태를 만드는데도 조선백자 같은 형태가 쉽게 나오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일본인들이 그 도공들을 모아놓고 시작했던 것이 모든 과정을 도제화하고 수치화해서 기록으로 남긴 것이고, 그 기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 도자기가 있는 거라고 해요.

     반면에 한국은 계산되지 않은 감을 바탕으로 작업을 주로 한대요. 다다미와 화문석의 차이, 정서의 차이랄까. 재밌는 건 저희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지 항상 작업할 때도 감을 많이 사용하더라고요. 스케치를 아무리 해도 절대 스케치처럼 안 나와요(웃음). 명맥과 규칙을 지키는 것 만이 답은 아니니까요. 만약 저희가 색을 유지하고 룰을 지키려고만 했다면 저는 지금 목선반만 열심히 깎고 있었겠죠? 근데 그러기 싫었기 때문에 지금 같은 변화와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거 같아요. 다양한 걸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요.”



물건연구소가 만든 나무 샘플러

물건연구소에서 자체 제작한 나무 샘플러. 참죽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느릅나무, 회화나무 등 국산목 자재가 대부분이다.



듣다 보니 참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많아요. 이런 게 궁금해도 어디다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검색을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이나 나무만 수집하시는 분들께 여쭤보는 거예요. 그 선생님들은 '어느 지역에 어느 나무가 죽었대 드디어', 그러면 가서 판재 사서 쟁여놓으시고, 연도별 수종별로 정리해두시고 그러세요. 강화도에 가면 창고에 나무만 들어있는 곳들도 있어요. 뿌리만 모으는 사람도 있고요. 나무들 보면 동그랗게 혹이 생긴 것들을 볼 수 있는데, 나무가 병이 나면 암 덩어리처럼 생기는 혹이거든요. 이걸 ‘벌’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벌들로 작업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 선생님들께 가면 이런 이야기는 1박 2일이고 3박 4일이고 들으실 수 있어요.”



향나무 샘플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물푸레나무는 껍질을 물에 넣으면 물이 푸른빛이 돈다 해서 물푸레나무라고 해요. 입이 쓸 때 '입이 소태야' 라고 하잖아요, 그 소태라는 것도 실제로 있는 나무인데, 한번 씹어보면 정말 써요. 오리나무는 오 리마다 심는다고 해서 이름이 오리나무고요. 그래서 조선 시대 때에는 오리나무를 가로수로 심고 거리를 계측했다고 해요. 한양까지 몇 리인지 계산해본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오동나무는 딸이 시집갈 때 가구를 짜서 만드는 나무이기도 하잖아요. 오동나무를 심고 약 20년쯤 지나면 가구를 만들 수 있는 크기로 자라요. 그리고 엄청나게 가벼워요. 이동이 결국 인력이다 보니 이동성이 좋은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고 하기도 하고요. 대추나무는 심재(내구성이 좋은 나무의 심지 부분)를 활용해서 참빗을 만드는데, 그 이유가 빗살을 만들 정도로 얇고 낭창낭창하게 가공해도 견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스님들 사용하시는 목탁도 살구나무로 만드는데, 꼭 바닷물에 담가 두었다가 말려서 가공해야 하고요. 그래야 소리도 잘나고 벌레도 다 죽는다고.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방법이 그렇대요.

    이건 저희 경험담인데, 먹감나무라는 나무는 그 자체가 달아서 곤충이 많이 달려들어요. 저희 공방에도 먹감나무가 쌓여있는데, 지금도 하늘소 애벌레가 나무를 먹고 있어요. 주변이 조용해지면 사각사각 먹는 소리가 들려요. 빗자루로 나무를 두들기면 잠시 조용해지긴 하지만요. 공방 문을 열어두면 하늘소 애벌레 먹으려고 참새가 식사하러 날아들기도 해요.”



물건연구소 작업실에 올려진 작은 나무공

물건연구소 작업실에 있는 작은 나무공



이렇게 나무 성질이 다 다르면 작업하시는 것도 힘드셨을 것 같아요.

“목선반 작업의 특징은 손의 감각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점 같아요. 나무마다 성질이 다르니까 깎는 힘, 각도, 얼마만큼 깎으면 날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도 달라요. 어느 방향으로 가공했을 때 나무가 뜯기는지 안 뜯기는지도 다르고요. 사실 나무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가공이 빠르고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제일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5년 동안 작업을 해보고 나니 나무마다 성질이 너무나도 다르고, 또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물건연구소 작업실 테이블의 모습

물건연구소 작업테이블



“그런데 작품 이야기 말고 나무 이야기만 해도 괜찮은 거예요?”

그럼요, 사실 인터뷰 전에 전시를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무를 만지시면서 느끼셨던 것들이나 경험하셨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장 새로웠어요. 그래서 이번에 인터뷰하게 된다면 이런 것들을 가장 여쭤보고 싶었거든요.

“실은 임정주 작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아요. 작업 프로세스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고, 노출된 것도 많아요. 그래도 오늘은 저희가 진짜 경험하면서 얻어낸 것들, 나무 자르러 갔다가 들었던 이야기들, 어떤 나무가 성질이 더러웠는지(웃음)에 대해 말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어떤 작품이 나올 때까지는 작가의 컨텍스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왔는지, 그 생각의 역사가 있어서 그 작가만의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완성된 작업 결과물뿐만이 아니라 작가가 작품을 완성해 나가면서 겪었던 경험이나 그 소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진다면 더 흥미롭게 바라봐지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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